내 사랑은 정말 게으르다. 내 발 언치에서 규칙적인 숨을 쉬는 마루를 보면, 난 내가 유보했던 사랑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늘 후회하며 마루를 어루만진다. 마루는 언제나 그랬듯 내 손길에 '고르릉 고르릉' (4년간 곁에서 온 감각으로 느낀 결과,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는 '골골'보단 '고르릉'에 훨씬 가깝다.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울림있는 소리이다.)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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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우리집에 왔던 첫날밤을 기억한다. 깡마른 꼬리를 이리저리 통통 튀겨대며 집안 구석구석 누비던 철없는 고양이였다. 아침밥을 거르고 밖에 다녀오면 할머니는 내게 '피죽도 못 먹은 얼굴로 돌아다니면 병 난다.'고 하셨는데, 난 마루를 처음 봤을 때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은 얼굴'이라 평했다. 마른 얼굴에 보이는 거라곤 커다란 초록빛 눈 두 개뿐인데 그 두 눈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볼 때면,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져 그 첫날은 마루 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내 주위를 서성이며 걸어다니는 마루를 혹여 밟을까봐서 걸음 하나도 제대로 옮기지 못했다. 정말이지 그렇게나 작고 생명력 넘치는 존재가 앞으로 우리집에서 함께 늙어갈 거란 사실에 무척 겁이 났던 그런 밤이었다. 

마루는 한 달간 잔병치레가 참 잦았다. 고양이 감기라 불리는 허피스를 지독히도 앓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곰팡이 피부염까지 걸려 한 달간 마루의 눈두덩이 털은 자라지 못했다. 마루는 허연 눈과 꽉 막힌 코로도 햇빛이 나는 날이면 거실 한복판에 드러눕는 그런 고양이였다. 따뜻한 햇빛이 나는 날이면 그걸 보느라 눈이 샐쭉해지던 고양이였고, 비가 오는 날이면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느라 눈이 커지던 고양이였다. 치레를 치르던 한 달 사이 마루는 제법 고양이 다운 태가 나기 시작했다. 솜털 같이 가늘고 부슬대던 털이 빠지고 윤기있고 빳빳한 털이 자라기 시작했고, 깡마른 꼬리는 어느새 우아한 곡선의 형태를 고고히 뽐내고 있었다.

고양이 다운 고양이로 무럭무럭 성장하던 시절의 마루를 관찰하는 것이 그 시절 나의 제일 큰 기쁨이었다. 다음 날 마주하면 어쩐지 더 길쭉해진 몸과 그윽하고 깊어진 눈. 마루를 마루라 부르는 날이 늘수록 더 더 높이 뻗치는 꼬리. 집에 오자마자 '마루~'를 부르면, 꼬리를 뻗친 채 쫑쫑 뛰어오는 고양이. 마루는 사랑을 표현하는데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고양이라 배까지 뒤집어보인다. 이 배를 만져주지 않으면 널 들여보내주지 않겠다며, 나를 오래도록 붙잡는다. 그런 마루에게만큼은 내 사랑을 유보하지 않겠노라 다짐 또 다짐했다. 사랑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나와 그런 나와 비슷한 나의 가족이 내어주는 사랑의 결과물이 바로 마루의 뱃살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루는 온 가족의 사랑을 당연히 제 것인양 받아들였다. 

벌써 마루는 4살이 되었고, 7.6kg의 거구 고양이다. (우리 가족은 마루의 몸무게를 우리 사랑의 결과물로 여기고 있다. 내 몸무게보다도 비밀리에 부쳤던 마루의 몸무게를 공개하니 어쩐지 변명을 늘이게 된다. 모두 놀라지 마시길.) 4년 간 마루에 대한 내 사랑이 유보되지 않았는가 자문한 날이 있다. 그러니까 일종의 자기반성을 했었던 셈이다. 마루는 여전히 내 손길에 온 몸을 울리며 '고르릉' 소리를 내고, 내가 집에 들어오면 제 배를 까며 날 쉬이 들여보내주지 않는다. 마루의 사랑은 단 한 번도 유보된 적 없이 정직하게 매일 매일 내게 전달되오고 있다. 나는 그런 마루에게 내 사랑을 매일 매일 올곧게 전달했는가. 

마루가 내 허벅지 사이에 온 몸을 기대어 잠을 청할 때, 새삼 서글퍼지곤 한다. 마루가 내 허벅지에 기대어 잠을 잘 땐, 허벅지에서부터 내 손 끝까지 마루의 숨이 전달된다. 그렇게 전달되는 마루의 숨소리를 종종 따라해보곤 한다. 마루가 내쉬는 숨을 따라 쉬다 숨이 차 다시 내 숨을 쉬려 할 때, 마루의 숨과 내 숨이 하나가 되는 순간. 정말이지 찰나이고, 한 두 번 있을까 말까 한 그 순간. 그 순간 잠시 공유되는 마루와 나의 숨에 난 마루와 나의 시차를 느낀다. 마루는 나보다 좀 더 빨리 숨을 쉬기에 좀 더 빨리 늙어가고 있음을 단번에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나보다 빠른 시간을 지나는 이 고양이에게 사랑을 유보할 수 없다 참회하는 밤이면, 그저 마루를 어루만질 뿐이다. 그럼 마루는 늘 그랬듯 '고르릉' 소리를 낸다. 가끔 곤히 자는 마루의 귀에 '사랑해' 라고 소리내어 말하곤 하는데, 동생은 그런 날 보고 잠시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내가 '사랑해'라고 소리내어 말했다는 사실에 놀라 날 쳐다보다 내 발 언치에서 잠을 자는 마루를 보며 이해가 되었다는 듯, 마루를 한 번 어루만지고 지 방으로 돌아갔다.

마루는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 모두에게 늘 올곧게 사랑을 전하는 정직한 고양이다. 사랑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나와 그런 나와 비슷한 나의 가족이 사랑을 소리내어 말하는 유일한 존재도 바로 마루이다. 

- (위) 나와 내 동생의 어린 시절.

- (아래) 마루의 어린 시절.

- 마루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