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쓴 장편소설은 「목련 줍기」이다. 「목련 줍기」를 썼을 당시 마음만큼은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도 잊혀지지 않는다. 특히 목련이 피고 떨어지는 때가 찾아오면, 그 소설을 썼을 때가 떠올라 평소엔 일절 펴보지도 않던 「목련 줍기」를 다시 꺼내어 읽어본다.

누구나 일생에 한 번 이상 지날 것이라 예견되는 시련이 내게도 찾아왔던 때였다. 내 시련을 소설 속 인물들에 모두 투영했고, 그 인물들이 끝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 잇던 문장들은 전부 눈물로 시작했기에 엉망일 수밖에 없었던 소설. 지금 읽어도 참 감정이 과하디 과한 소설이라, 다신 내 일상에 침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소설이다. 내가 쓴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두게 되는 소설이다.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선 내 아픔을 이해해야 한다고 하니, 꼭 필요했던 시기라고 포장해봐도 정말이지 내 아픔이 전부였던 때였다.

살다보면 여태껏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나를 소개하기 위해 마땅히 제시해야 할 이력 중 하나는 슬픔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답을 오래 고민한다. 이 질문은 그리 무거운 의도로 던져진 게 아닐 것이다. 귀하의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하기 위함이며, 적절히 슬픔인 양 포장된 그것을 끝내 극복해낸 사례를 듣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질문 앞에 난 지나치게 솔직해진다. 한 문장 안에 슬픔이란 단어를 두어번 사용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끝내 울어버리고 만다. 여전히 삼 년전의 여름이 버겁다. 

아빠가 많이 아팠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와 더 이상 연락하지 않기로 결심했었던 그 여름. 그 여름만큼은 내 슬픔을 누구나 마땅히 지나야 할 시련으로 뭉뚱그리지 못했다. 어릴 때 부터 줄곧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이 삶을 어떻게 견인해야하나 고민해왔지만, 그 해만큼은 종종 현실이 아득해져갔다. 길어지는 햇빛이 두려웠고, 겨우 맞이한 밤에는 자주 울었다. 사랑과 슬픔을 평범한 것으로 뭉뚱그리는데 능한 엄마도 그 해만큼은 사랑을 강조했고, 슬픔을 나누고 싶어했다.

그 해만큼은 엄마 앞에서 제일 솔직한 딸이 되었다. 아빠의 아픔이 내 아픔인 양 두렵다 고백하기도 했었고, 사랑하는 친구에게 모질게 더 이상 연락하지 말자고 얘기했던 날엔 힘들다고 엉엉 울기도 했었다. 엄마는 그럴 때 마다 자기 얘기를 해줬다. 사실은 엄마도 많이 두렵다고, 그리고 엄마도 제일 사랑했던 친구와 멀어진 적이 있었다고. 엄마가 고등학생 때 강수지를 정말 많이 좋아했었단 사실도 그 해에 처음 알게 됐다. 엄마가 사랑했던 친구와 멀어지고 눈물지으며 들었던 노래라며, 강수지의 <I Miss You>를 틀어줄 때면 같이 울고 싶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슬픔이 엄마의 슬픔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너무 자주 울었던 탓일까.

언젠가 민형에게 삼 년전 여름에 대해 꺼낸 적이 있다. 별 다른 이유없이 어쩌다 툭 튀어나왔다. 어쩌면 내가 이런 사람인데도 괜찮냐고 겁을 주기 위함도 있었던 것 같다. 난 늘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슬픔을 꺼내게 되니까, 그게 무지 싫어서 혼자서 해내는 것들을 늘려갔으니까. 민형은 내 얘기를 그저 듣고는 자기 얘기를 해줬다. 나도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민형의 얘기를 들었다. 여전히 나의 슬픔과 민형의 슬픔은 각각 제 몫대로 남아있겠지만, 가끔 내 슬픔만큼 민형의 슬픔을 헤아려보게 된다. 힘들었겠구나.

내 첫 장편소설 「목련 줍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엄마의 얼굴에 삼월의 햇빛이 일렁였다. 그 빛이 너무 반짝거려, 엄마 얼굴 반쪽이 사라졌다.

난 여전히 삼월에도 엄마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보다도 더 자주 엄마를 헤아려보던 때가 있었다. 엄마에게 여태껏 제일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냐 묻는다면, 엄마는 어떤 답을 할까. 나와 같이 삼 년전 여름을 꺼낼까. 난 엄마의 슬픔을 내 것인양 끌어안을 생각이 없지만, 그럼에도 난 엄마와 아주 많이 닮아있다. 

*

- 강수지, <I Miss You>  

*

- 오늘도 용기를 내어 3월 28일에 쓴 일기를 공유해요. 내밀한 일기장을 공유하고 싶은 이유를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건 정말 다른 얘기인데, 제 오른손 중지엔 굳은살이 박여 있는데요. 아주 어릴 때부터 글씨를 쓸 때면 손가락에 힘을 꽉 쥐어서 그렇대요. 어릴 땐 울퉁불퉁한 손가락이 마음에 들지 않아 힘을 빼는 연습도 해봤는데, 이제는 이 굳은살이 주는 묘한 안정감에 기대어 하루를 보내요. 글씨를 쓸 때만큼은 온몸에 힘을 주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겠거든요. 잘 해내고 싶은 마음 ! 언젠가부터 전 굳은살을 박기 위한 목적으로 일기를 쓰는 것 같아요. 모두들 저마다의 굳은살을 박아가며 살아가고 있을 테니, 저도 제 굳은살을 보여주고 싶어요. 제가 소설을 읽을 때 그래요. 타인의 굳은살을 보는 것 같아요.